이번엔 수평적 조직구조에 대한 제 경험을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제가 다녔던 게임 업계는 대표적인 수평적 구조를 지향하는 곳이었습니다.
폭넓은 창의력! 집단 지성! 혁신적인 아이디어!
하지만 이상은 조금 달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경험한 수평적 조직구조

제가 수평적 조직구조를 맹신하게 된 건 Valve의 신입사원 안내서부터 였을 겁니다. 10년 전쯤 유행했던 건데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네요.

수평적 구조에 대한 로망을 갖고 들어간 게임 업계에서 처음으로 수평적 조직구조를 경험했던 저는 꽤 충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와, 모두가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모두가 아이디어를 낼 수 있네?”
“공유하고 듣는 게 정말 중요하구나”
“와,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며 성장하는 게 이런 거구나”

이런 경험을 하면서 수평적 조직구조에 대한 찬양은 더욱 커져갔습니다.
거의 근 8년가량을 수평적 조직구조를 찬양하고 다녔으니 제 업력에 70%는 찬양했다고 봐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전 조금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수평적 조직구조가 죽었다 라고 말하고 다닙니다. 그 이야기를 드려볼까 합니다.

수평적 조직구조는 죽었다.

먼저 수평적 조직구조에 대한 이상을 깨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네요.

  • 수평적 구조를 원하는 당신, 혹시 그 구조안에서 리더가 없다면 리더가 될 준비가 되어있나요?
  • 수평적 구조를 원하는 당신, 토론이나 비판을 받는 것에 익숙합니까?
  • 수평적 구조에서 결정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민주주의(다수결)? 결정 프로세스? 그 프로세스가 무엇일까요?

이 세 가지 질문은 제가 직접 수평적 조직구조를 경험하면서 느낀 문제점이었습니다.

진짜 수평적 조직구조는 그 누구도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지만, 고수준의 리더가 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모두의 발언권은 가능한 동일해야 하고, 발언의 퀄리티 수준 또한 비슷해야 합니다.

그리고, 비판을 수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저도 경험했지만, 서로 수평적으로 의견을 교류하는데 본인의 아이디어가 채택되지 않거나, 비판을 받았을 때 불편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와는 정반대로, “착한사람 컴플렉스"도 있습니다. ‘난 어떤 결정을 하든 상관없어요.’, ‘좋은 게 좋은 거지’ 라는 생각을 조직 전반에 걸쳐 갖게 되는 문제입니다. 이 경우는 **“항상 결정을 보류”**합니다. 즉, 결정이 이뤄지지 않게 됩니다. 수직적으로 결정하면 우린 수직적 조직구조가 되는 거고, 민주주의로 하게 되면 소수의 중요 의견은 무시되는 거고, 데이터로 하기엔 쌓인 데이터가 없죠.

그렇게 한 달, 두 달.. 1년이 지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프로덕트가 되어있습니다.

전문성은 상하관계를 가집니다.

옛 회사에서 크로스펑셔널(다양한 직군이 모여서 일하는) 조직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모두가 원해서 수평적 조직구조를 지향했는데, 꽤 충격적인 경험을 했습니다. 자신은 크로스펑셔널이 ‘자기 직군의 전문성을 파괴’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던 것인데요.

서로 돕고, 의견을 나누고 프로덕트를 빌딩하는 조직을 이상적으로 생각했지만, 사람들 마음속에선 ‘다른 직군에 사람에게 부탁하는 건 내 실력 부족이야.’, ‘내 작업물을 전문성 없는 다른 직군이 평가하는 건 아니지’ 라는 생각을 더 많이 갖고 있었던 것이죠. (물론 여기엔 회사의 평가문화가 전문성, 직속 직군위주의 평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리더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Valve의 신입사원 안내서를 보면 리더를 굳이 명시하지 않아도 누군가 나서서 리더의 역할을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만 정말 많은 회사에서 리더는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권한 없이 책임만 지는 리더를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게임 회사에서 수평적 조직 구조로 있던 대부분의 팀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리더를 명시하지 않고 흐지부지하게 두면, 조직은 어떻게 될까요?, 제 경험상으론 상위권자에게로 계속 올라가서 결국엔 프로덕트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 단편적인 이야기만 듣고 결정하는 대참사가 일어납니다. 물론, 리더가 결정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라는 걸 리더가 된 후에 알았습니다(흑ㅠ)

그외에도…

이 외에도 수평적 조직구조는 스케일러블(Scalable)하지 않습니다. 정말 집약적으로 20명 이하의 서로 잘 아는 조직은 수평적 조직문화에 적합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 이상의 인원이 모이면 수평적 조직구조는 거의 다 무너졌던 것 같습니다.

조직에 누락되는 정보가 생겨나고, 동시에 스스로 정보를 찾으려고 하지도 않고, 엄청나게 많은 의견을 공유하는 회의를 자주 해야 하고, 그 회의에서 결정이 되지 않고, 그 과정에서 자발적 참여조차 하지 않는 관리되지 않는 사람이 무조건 생겨납니다. 즉 워크웨이가 없는 조직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답은 없지만…

네, 그래서 저는 과감하게 수평적 조직구조는 죽었다라고 말하고 다닙니다.

명확하게 리더가 있고, 결정 체계가 있는 조직을 지향합니다. 수직적으로 보이지만 서로의 의견을 듣고, 리더가 경청하고, 결정에 대해 얼라인을 하는 조직을 말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Disagree & Commit 문화를 좋아합니다. 모두의 이야기를 듣고, 얼라인도 하겠지만, 결정을 내리면 동의하지 않아도 따라야 한다는 조직문화를 이야기합니다. 최근에 있었던 대부분의 조직에서 이를 지향하려고 했고, 이를 지향하는 리더가 되려고 노력도 했습니다. 조금은 하이브리드(수직,수평)지만, 명확하게 권한과 책임이 주어지는 조직, 지금은 이게 좋은 조직에 가깝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