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업계를 다니면서 만났던 약간은 극단의 두 종류의 리더분이 있습니다.

가장 늦게 퇴근하는 리더

한 분은 가장 늦게 퇴근하는 리더로, 특별한 일이 없다면 새벽이 되었건 철야가 되었건 끝까지 남아서 함께하는 리더 였습니다. 그 리더의 신조는 함께하는 리더 였습니다.
그분은 함께한다는 경험을 부여해 주고, 언제든 3분 대기조처럼 대응을 해주셨습니다. 때로 작업이 너무 늦어지거나, 다들 너무 바쁘다고 판단이 들면 간단한 버그나 기능을 직접 개발하시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리더의 워라밸은 아마도 최악이었을 것입니다.

가장 빨리 퇴근하는 리더

또 한 분의 리더가 있습니다.
이분은 가장 빨리 퇴근하는 리더로, 특별한 일이 없다면 오후 5시면 거의 항상 퇴근하시곤 했습니다. 따라서 모든 회의 일정이나 결정해야 하는 내용은 오전, 오후에 매우 집약적으로 이뤄졌습니다. 그 리더의 신조는 리더가 바쁘면 안된다 였습니다.
사실 그분과 함께하는 첫 달은 꽤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스프린트 계획을 과하게 잡아서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 리더는 본인의 업무를 마무리하고 어김없이 5시에 퇴근을 하셨습니다. 그때 오후 10시까지 코딩을 하면서 제 머릿속에선 ‘아니? 일이 이렇게 많은데 퇴근하신다고?’ 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그렇게 1년을 같이 일하다 보니,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다른 팀원들이 7시나 8시에 출근해서 리더와 비슷한 속도로 업무를 마감하고, 5시에 퇴근하는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모범이 되는 리더란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저의 경험

가장 늦게 퇴근했던 리더

그리고 저도 성장을 하며 여러 번 팀을 이끌어보면서 어느 순간 이 두 리더를 돌이켜보게 되었습니다.
매니지먼트 경력 초기엔 저는 “가장 늦게 퇴근하는 리더” 였습니다. 어쩌면 함께하는 것을 떠나, 팀원들을 못 믿고 제 시간을 들여서 코딩하고, 고치고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리딩 경험이 저에게 다양한 경험 기회와 팀원들의 신임을 얻었다고 생각하지만, 프로덕트가 진행될수록 팀원을 망치는 리더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가장 늦게 퇴근하는 리더의 특징은 함께 일을 한다는 명목하에 궂은일을 리더가 가져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팀원들은 더 중요한 작업, 필요한 작업을 해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재미없는 작업, 중요하지 않은 작업을 도맡아서 하게 됩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나서 팀원들의 사일로가 눈에 띄게 생기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영역이 명확하게 생기고, 자기가 좋아하는 작업 위주로 일을 하게 되었죠. 또한 리더가 바쁘다 보니, 결정 부채가 자주 생기기도 했습니다. 깊게 고민하고 결정해야 하는 주제를 10분 만에 이야기한 다음에 여러 번 번복하게 되기도 하고 심사숙고하지 못하는 상황이 여러 번 벌어졌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100명 이상의 팀에서 이러한 리더는 좋은 리더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팀원들의 역할이 명확한 경우 이런 리더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가장 빨리 퇴근하는 리더로

최근 리더로서 일을 하면서 가장 추구하려고 했던 것은 빨리 퇴근하는 리더 였습니다. 말이 빨리 퇴근하는 리더지, 실제로 이 리더의 난이도는 매우 매우 높습니다.
이러한 리더는 2가지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1. 자신의 업무를 가장 빨리 마무리할 것
  2. 팀원들에게 업무 지시를 명확히 하고 믿고 맡길 것

이 2가지 선행 조건을 깨달은 이후엔 위에 언급했던 가장 빨리 퇴근했던 리더가 경이로워졌습니다. 저는 빨리 퇴근하려고 노력했지만 퇴근하지 못한 적도 많았고, 믿고 맡기려고 했지만 믿지 못한 적도 많았습니다. 만약에 이 2가지 선행 조건을 하지 못한다면 순식간의 최악 리더로 변할 수 있습니다.

  • 자기 할 일을 제대로 안 하고 퇴근하는 놈팡이
  • 업무 떠넘기고 자기는 퇴근하는 무책임한 리더

어쩌면 여러분이 생각하는 안 좋은 리더상이 이러한 리더상이 아닐까 싶네요(?)
가장 빨리 퇴근하는 리더로 변화하는 과정은 좋은 영향력을 많이 주었습니다.

  1. 업무를 명확하게 정의하게 됩니다.
  2. 1:1 미팅을 주기적으로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3. 회사에서 집중적으로 업무를 하고 퇴근할 수 있습니다.

팀원을 믿고 맡기는 건 팀원들의 심리적 안전감을 부여합니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 팀원들의 워라밸이 자연스럽게 좋아지고 업무도 다양한 영역에 걸쳐서 해내는 능력을 키우게 됩니다.

물론 생존이 걸린 상황이나 중요한 시기에 스타트업에서 빨리 퇴근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때는 야근이나 크런치는 시기와 산출물을 명확하게 해야 합니다.

저도 여전히 좋은 리더가 어떠한 리더인지, 어떤 매니지먼트가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지 명확하게 결론짓진 못합니다. 하지만, 리더가 가진 생각, 리더가 모범적으로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달성해 나가다 보면 좋은 리더로 평가받는 시기가 오지 않을까요? 후후후..